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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氏는 어떻게 김현구 교수를 임나일본부론자로 매도하였는가?

(이덕일 氏의 모습)


1.

이덕일 氏는 최근에 펴낸 자신의 저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 교수를 결론적으로 임나일본부설 지지라고 규정하며 비난하였다. 필자는 이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김현구 선생은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임나일본부설 비판론자 중 한 명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임나일본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역사교육학과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가 정년 퇴임 후에는 명예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현구 선생은 일찍이 직접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면서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지닌 모순과 문제점을 여러 문헌 사학적 근거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 분야에 대해서는 일가를 이룬 연구자로, 그의 연구 내용의 골자는 『일본서기』에 보이는 이른바 왜가 임나에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은 허구이며, 그 실체는 사실 백제가 가야 지역에 설치한 기구였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왜가 한반도 남부를 평정한 기록에서 그 싸움의 주체가 사실은 백제의 장군 목라근자로 되어있다는 점, 임나일본부 설치 당시에 사실 "일본"이라는 용어는 없었고, 그저 "왜"라는 명칭만이 있었으므로 그 존재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인데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발췌해 놓은 부분이 있으니 관심이 있거든 직접 읽고 참고해 보기를 바란다.(#)


한편 어째서 『일본서기』에 마치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며 종주국 행세를 했다는 기록이 언급되었는가 하면, 백제는 오랜 기간동안 가야 일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일본과 가야 등과의 외교 관계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었으나, 훗날 백제가 멸망한 후에 일본이 이를 왜곡하여 마치 왜가 가야 지역에 설치하여 이를 지배하려 했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기술하였다는 것이다. 김현구 선생은 이러한 연구 성과를 그간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등의 대중 서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 주장을 한 김현구 선생을 이덕일 氏는 대체 무슨 근거로 해서 임나일본부 지지론자로 몰아갔는지, 그리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행위를 하였는지 의문이 들었기에 책을 읽어보고 그 문제점을 집어보기로 하였다.



2.

이덕일 氏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현구는 이 책 곳곳에 백제의 지배를 강조해서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 번째 논법이 등장한다. (중략) 임나일본부를 지배한 것은 백제인데, 그 백제를 지배한 것은 야마토 정권이라는 것이다."

 

-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340~341


대체 이덕일 氏는 왜 이런 주장을 한 것일까?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았는데 그 것이 실로 가관이다. 다름 아닌 김현구 선생이 논지를 전개하면서 인용한 사서가 『일본서기』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이덕일 씨는 실로 교묘한 편집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가 왜곡과 과장이 많은 역사서라는 것은 국제적 상식인데, 스에마쓰가 그랬고, 쓰다 소키치가 그랬던 것 처럼 일본서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341


얼핏 보면 그럴싸하지만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얼마나 웃기는 논리인지 알 수 있다. 


우선,  첫번째는 애초에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이론 자체가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이를 살펴보지 않고는 임나일본부설을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서기』 자체는 외교적 부분에 있어서는 왜곡이 심각하다 하러다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편찬되었고, 그 과정에 백제 측의 기록(이른바 백제삼서라 한다)이 다수 인용되고 있어 사료비판을 통해서 『삼국사기』 등에 빠진 삼국 내부의 정세에 관한 기록을 보충하는데 유효하게 이용되고 있다. 애초에 그 유명한 백제의 장군 목라근자도 고작 『일본서기』의 기록에 등장할 뿐이다. 이덕일 氏의 주장대로 『일본서기』 자체의 인용을 금해야 한다면 백제 근초고왕의 한반도 남부 재패 기사는 모두 헛깨비가 되어버린다. 더불어 가야에 관련된 기록도 비록 왜곡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일본서기』에서 주로 보인다. 즉 『일본서기』 자체의 기록을 무시해버리면 백제사와 가야사는 거의 미궁에 빠지게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을 이덕일 氏는 과감하게 무시하고 있다. 애초에 사료비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둘째는 이미 김현구 선생이 『일본서기』의 내용에 대하여 사료비판을 가하며 "왜가 지배한 임나일본부"는 허구에 불과하며 그 실체는 백제가 가야 지역에 설치한 기관이라는 논리는 이덕일 氏도 인정한 바인데, 이런 부분은 교묘하게 넘겨가면서 마치 김현구 선생이 『일본서기』에 실린 것을 사실 그대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현구 선생이 애초에 그 내용을 비판없이 받아들였다면 앞에 전개한 논지는 애초에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이덕일 氏가 자신의 논지를 입증한다며 김현구 선생의 책에서 구절을 하나 뽑아 본문에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일본서기의 507년에서 562년 사이의 기록 가운데 야마토 정권과 한반도 각국의 인적˙물적 교류를 조사해보면 신라·고구려와는 각각 왕복 2회의 교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교류 내역을 보면 야마토 정권은 신라나 고구려에서 전혀 사자를 파견하지 않은 반면 신라와 고구려는 각각 2회씩 야마토 정권에 사자를 파견했다. 임나와는 왕복 8회의 교류가 있었는데 그중 야마토 정권은 3회에 걸쳐 임나에 사자를 파견한 반면 임나는 5화에 걸쳐 야마토 정권에 사자를 파견한 것으로 씌어 있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1


이 부분에서 김현구 선생은 그저 "일본서기에는 이렇게 씌여있다"고 내용을 인용한 것 뿐, 그 자체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일은 없다. 이덕일 씨는 이 구절을 들고 와서는 김현구 선생의 의견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해석을 내리고 있다.


"김현구는 야마토 정권의 시각으로 고구려·백제 및 임나를 본다. 야마토 정권은 신라·고구려에서 사신을 전혀 파견하지 않은 반면 신라·고구려는 사자를 파견했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야마토 정권이 신라·고구려부터 조공을 받는 상국(上國)이란 뜻이다."

-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 342


이런 이덕일 氏의 주장은 대단히 악의적이며 또한 교묘한 "편집질"에 의거한 것에 불과하다. 김현구 선생은 단지 그런 외교 활동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 뿐, 신라나 고구려가 왜를 상국으로 모셨다는 따위의 언급은 전혀 한 일이 없다. 고작 그런 발언만으로 이런 해석을 내릴 수 있다니, 이덕일 氏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고 싶어서 안달을 한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김현구 선생이 책에 실은 한 마디의 구절만으로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어처구니없다. 이덕일 氏가 인용한 구절 뒤에 이어지는 김현구 선생의 주장을 한번 보기로 하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스에마쯔가 근거로 삼고 있는 『일본서기』에 의거하는 한, 야마또 정권과 한반도 각국의 관계는 과거 스에마쯔설로 대표되던 통설처럼 임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3


"야마또정권과 신라나 고구려의 교류는 각각 왕복 2회에 그쳤고, 임나와의 교류도 왕복 8회에 그친 반면 백제와는 왕복 39회에 이르고 있어 큰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와의 교류는 그 내용도 대부분 우호적인 관계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에마쯔가 근거로 삼는 『일본서기』에 의하는 한 적어도 야마또 정권이 임나를 근거지로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3


이처럼 오히려 김현구 선생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적극 활용하여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려면 『일본서기』에 보이는 대외교류기사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이덕일 氏는 이를 가지고 마치 김현구 선생이 그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여 되려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려 했다는 것인데, 나로써는 어떻게 해야 이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3.

이덕일 氏는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 지지론자이며 식민사학자라고 주장하며 또다른 근거를 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또다서 김현구 선생의 책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제 1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 때 위와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하자 일본 측 대표 S씨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했다. '야마또정권의 임나와의 인적·물적 교류가 백제에 비해 아주 미미한 것은 임나가 야마또정권의 직할지(미야께, 屯倉)이거나 임나에는 직접 책임자를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야마또정권이 임나에 직접 의사를 전달한 예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 의사도 대부분 백제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씌어 있다고 말하자 아무 말도 없었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3


이와 같은 김현구 선생과 일본 대표 S씨의 논쟁에 대해 이덕일 씨가 내리고 있는 평 또한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학자는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통해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스에마쓰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김현구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은 사실인데, 이 임나는 백제가 지배했고, 야마토 정권은 백제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외형도 내면도 일본인인 일본 국적의 S씨와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내면은 일본인인 한국 국적의 김현구 사이의 논쟁같지도 않은 논쟁이다."

-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344


이덕일은 김현구 선생을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내면은 일본인'이라며 잔혹하게 조롱하고 모욕을 주며 김현구 선생이 백제가 야마토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구절에서 김현구 선생은 그런 말은 한적도 없다. 다만 일본인 S씨가 질문한 점은 "야마또정권과 임나의 관계의 교류가 미비한 것은 야마또가 임나를 직접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하는 점인데, 김현구 선생은 "하필이면 야마또가 임나와 교류를 할 때에도 대부분 백제를 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 단순히 "『일본서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임나가 일본의 직할령일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 김현구 선생은 몇몇 사례를 들며 그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략) 위 내용을 보면 야마또 정권은 임나에 대한 의사를 전부 백제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 내용의 사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일본서기』에 임나 문제에 대해 야마또정권은 단순히 백제를 지원하는 위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 136


그러나 역시 이덕일 氏는 이런 김현구 선생의 주장은 모두 무시하고 교묘하고 악의적인 편집을 통해 김현구 선생이 마치 백제가 야마토 정권의 지배를 받은 것인냥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앞에서도 누누히 말했지만 김현구 선생의 주장 어디에도 백제가 하위이며 야마토가 상위라는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의심이 가거든 김현구 선생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찾으면 말씀하주시기 바란다.



4.

이덕일 氏가 김현구 선생을 비난하는 또 다른 근거는 군사원조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도 이덕일 氏는 김현구 선생의 책에서 구절을 인용해와 비난하고 있다. 氏가 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야마토 정권은 전후 5회에 걸쳐 한반도에 원군 내지는 인부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그 특징은 전부 백제를 위해 파견했다는 것이다.… 537년 신라의 임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도 최종적으로는 백제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이때 오토모노 나나무리 오무라지(大伴金村大連)의 명으로 백제에 파견되었던 일라(日羅)는 46년 간이나 백제에서 관료로 근무하다가 586년에야 귀국했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8


"『일본서기』에는 507년에서 562년 사이에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 파견한 24회의 사자 중에서 백제의 요구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 경우는 14회라고 되어 있다. 그중에서 임나에 관한 내용은 5회이고 나머지 9회는 전부 원군이나 군수 물자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시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였던 것은 군사 원조였다고 볼 수 있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42~143


이에 대하여 이덕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현구에 의해 백제는 졸지에 야마토 조정에 군사 원조를 구걸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345


그러나 김현구 선생은 이에 대하여 백제가 야마토 측에 군사 원조를 "구걸"하였다고 하지 않았다. 앞서 김현구 선생의 주장을 인용한 부분에서 분명 김현구 선생은 "원군 내지는 인부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그 특징은 전부 백제를 위해 파견했다는 것이다." "임나 문제에 대해 야마또정권은 단순히 백제를 지원하는 위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라고 주장하며 야마토의 군사적 행동은 백제에 대한 지원과 원조에 불과하다는 뜻이지 이를 토대로 백제가 왜에 비하여 하위에 있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군사원조"를 이덕일 氏는 괴이하게도 왜곡되게 바라보고는 "구걸"이라 주장하고 있다. 氏야말로 오히려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김현구 선생이 주장하는 백제와 왜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용병" 관계이다. 5세기 이후로 고구려의 대대적인 반격에 부딪힌 백제는 아신왕 때에 큰 참패를 수차례 당하더니 결국에는 개로왕이 살해당하고 수도였던 위례성을 함락당하고 웅진으로 천도하는 등 그 기세가 크게 악화되었다. 세력이 약화된 백제는 자연히 주변 세력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견제해야 했고, 때문에 왜에 문물을 전해주는 조건으로 군사 원조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시기 즈음에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아신왕 대로부터 백제가 왜와의 외교관계를 돈독히하고,  왜에 왕자를 질(質)로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은 전부 끊어버리고 그저 몇몇 구절만 이용하여 김현구 선생의 주장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백제의 군원 요청에 대해 야마또정권은 9회에 걸쳐 원군이나 말, 배, 활과 화살, 식량 등의 군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9회에 걸친 야마또정권의 군원에 대해 백제는, '조(調, 조세)'라고만 씌어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로 9회에 걸쳐 오경박사를 중심으로 학자나 전문지식인, 승려·불경·깃발 등의 불교 관련 문물을 보내고 있다. 백제가 보낸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 제공이 야마또정권의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면 야마또정권은 9회에 걸쳐 군원을 제공하고 그때마다 백제로부터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을 제공받았던 셈이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43


"야마또정권의 군원 제공이 백제로부터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은 왜가 15회에 걸쳐 백제에 파견한 사자가 분명하게 요구한 것이 전부 선진문물이나 오경박사 등이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결국 이는 당시 야마또정권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일관되게 추구한 것이 전문인이나 선진문물의 획득이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두나라의 관계를 보면 백제는 야마또 정권에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야마또정권은 백제에 군원을 제공하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43~144


"적어도 『일본서기』에 의한다면 케이따이천황(재위 507~31)이 등장하는 507년에서 임나가 멸망하는 562년 사이의 야마또정권과 한반도 각국과의 관계는 일본 학계가 주장하는 것 처럼 임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백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백제와의 관계는 특수한 용병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48


이덕일 氏가 "백제가 왜에게 군사 구걸을 하게 만들었다며" 비난하던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여기서 백제가 왜에 군사를 구걸했다거나 왜보다 하위에 잇었다는 언급은 나오지도 않는다. 氏는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읽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걸 비틀고 꼬아서 모욕을 줄 생각만 한 모양이다. 그도 아니면 굳이 이렇게 애를 쓰더라도 백제를 왜의 하위국가로 만들고 싶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알기로 氏는 분명 고대사에 관련된 책도 몇 번 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간단한 상식도 몰랐던 것일까?


더욱이 김현구 선생은 책의 결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목라근자(木羅近資)가 369년 가야 7국을 평정하고 382년 임나(고령가야, 대가야)를 구원함으로써 백제의 임나경영이 시작되었다. 그후 백제의 임나경영은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木滿致)를 비롯하여 목군 유비기(木君有非岐), 목군 윤귀(木君尹貴) 등 주로 목씨 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임나경영의 토대를 만든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구원을 청하러 도일했다가 '소가(蘇我)'에 정착하게 된다. 그가 바로 100여년간 야마또정권의 실권을 장악했던 소가씨의 조상 소가만지(蘇我滿智)이다."

- 김현구, 임나일본수설은 허구인가, p.197


"그런데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자 일본과 신라 간에는 대립이 심화되고 일본에서는 한반도 각국을 일본에 조공을 바치던 나라로 취급하는 번국(藩國) 사상이 유행하게 된다. 따라서 소가만지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상인 소가만지가 원래부터 왜인이었음을 주장하게 된다. 그 결과 각 씨족들이 제출된 자료를 근거로 『일본서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소가만지의 부(父) 목라근자를 비롯한 목씨 일족들이 백제의 장군으로서 수행한 임나경영이 일본천황의 명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97~198


"결국 『일본서기』에 야마또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처럼 되어버린 것은 『일본서기』 편자의 관계자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 오해가 천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임진왜란이나 한일강제병합이라는 한일 양국간의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99


여기서 김현구 선생이 백제가 왜의 속국이었다거나, 군사원조를 구걸했다거나,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했다거나 하는 대목이 보이는가? 필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덕일 氏는 어찌 생각할련지 모르겠다.



5.

결론적으로 볼 때 이덕일 氏가 김현구 선생의 논지의 앞뒤를 모두 자르고 한낱 임나일본부 지지론자로 매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오로지 하나, 『일본서기』의 내용을 통해 논지를 전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누누히 이야기 했듯이 이는 결코 비판할 거리가 되지 못할 것들에 불과하다. 


애초에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서기』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데 그 내용을 이용함은 너무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거늘, 이덕일 氏는 이를 교묘하게 편집하여 독자들에게 김현구 선생이 마치 그 내용을 그대로 신봉하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것 처럼 전하고 있다. 얼마나 참담하고 어이없는 일인지는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판단해주시기 바란다. 이 참담하고 어처구니없음에 필자는 더 할 말이 없다.



6. 

그렇다면 필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덕일 氏는 김현구 선생을 임나일본부 지지론자로 몰아가면서 김현구 선생의 책에 실린 내용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그 것은 아마 이덕일 氏가 한번만이라도 김현구 선생의 책을 읽어봤다는 뜻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선생의 책을 단 한번이라도 읽어 봤다면 이런 주장은 함부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측컨데 이처럼 이덕일 氏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트집을 잡아가며 김현구 선생을 모함한 이유로는 첫째로 김현구 선생이 氏가 언제나 식민사학이라고 모함하며 매도하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둘째로는 김현구 선생을 마찬가지의 논리로 식민사학자로 매도한 최재석 씨의 말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해당 저서에서 이덕일 氏는 최재석 씨의 주장을 몇차례 언급하고 이를 원용하여 김현구 선생을 식민사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이다. 책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다면 이런 주장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말만 곧이 믿고 멀쩡한 한 명의 사학자를 하루아침에 요술을 부려 식민사학자요 임나일본부 지지론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반면에 만약 이덕일 氏가 책의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면 결론은 뻔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얼마나 독선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굳이 글을 올려 이덕일 氏의 이와 같은 비열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은, 이덕일 氏의 책이 대중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고 또 이에 휘둘려서 그 사실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비록 약간이나마 경각심을 들게 하고 싶었다. 그 이외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만일 김현구 선생의 책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읽어봤다면 선생이 임나일본부 지지론자라는 말은 그저 지나가는 농담에 불과하겠으나 이덕일 氏의 대중적 인지도는 김현구 선생을 훨씬 능가한다. 따라서 氏의 책만 읽고 김현구 선생에 대한 모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아래의 몇몇 캡쳐가 그 예이다.







전부 김현구 선생의 책을 단 한번이라도 정독해봤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김현구 선생은 어디까지나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백제가 가야 지역에 설치한 기관 혹은 직할령 따위로, 후에 왜가 기록을 왜곡하여 그 이름을 고치고 자신들이 가야를 지배했던 것 처럼 꾸몄다고 주장한 것 뿐인데 왜 이러한 모욕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왜 평생을 임나일본부 비판에 바친 올곧은 한 명의 학자가 이처럼 매도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악의에 찬 선동과 모함 때문이다.


나치 정권에서 히틀러의 충실한 나팔수로 활동했던 괴벨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던가? "선동은 문장 한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때면 이미 사람들은 선동당해있다."라는 그 유명한 명언. 오늘도 나는 이 것이 바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참담하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으니 쓸쓸히 부는 겨울바람 속에서 탄식할 뿐이다. 


이덕일 氏, 필자는 어릴 적부터 氏의 책을 많이 읽었고 또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예전에는 氏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氏는 학계의 이름을 팔며 대중을 선동하더니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참담한 짓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그래도 열정이라도 느껴졌는데 이제는 비열한 사기꾼, 선동꾼으로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한때는 당신을 존경하고 애호했던 필자의 과거 모습이 무참해지고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앞으로 이런 사기는 치지 말기를, 그리고 부디 양심을 찾으시기를 빈다.



ps. 

아마 이 글을 읽고는 이덕일 氏의 비열하고 비양심적인 행위를 변호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간에는 氏의 이러한 본질을 모르고 그저 민족주의 사학자, 노론사관에 맞서 싸우는 애국투사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氏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그저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쓰레기"로 몰리기 십상이다. 본인도 그런 일을 다른 곳에서 몇 번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이덕일氏가 식민사관에 입각한 당쟁론을 그대로 우려먹으며 노론사관이니 뭐니 하는 괴상한 논리를 펼칠 때에도 정병설, 오항녕 등의 학자들이 반박했으나 결과는 크게 다를 바 없었다. 氏와 氏의 독자들로부터 조롱만 들었을 뿐. 아마 필자도 이 글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조롱당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필자가 제기한 여러 문제점을 통해 보더라도 이덕일 氏의 주장이나 개인적인 신념 등이 얼마나 "민족주의적이고 애국적"이냐를 따나서 이는 명백한 사기 행위이자 악의와 편견과 증오로 인해 이루어진 모함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한 마디만 하려고 한다. 이덕일 氏의 책만 읽고 똑같은 내용을 반복 되풀이하는 댓글을 달기 이전에 김현구 선생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도 한 번 읽고 오기를 바란다. 2010년 경에 펴낸 책인데 아직도 구하기 쉽다. 그도 아니라면 그 이전에 선생이 펴낸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를 읽고 와도 좋다. 그 책에서 김현구 선생이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한다던가 혹은 백제가 왜의 지배를 받았다고 언급한 구절이 있는지 꼼꼼히 찾아보고 양심적으로 생각하며 판단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서 이덕일 氏의 그 잔인함과 비열함과 수준낮음을 변호할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지난 겨울, 다른 곳에서 쓴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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